1999년 대학원 1학년 때 논문쓰기위해서 정리한 글이다.
나는 브루스 커밍스를 E.H.카 만큼 위대한 역사학자라 생각했기에 그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 이후를 연구하고자 했다.
이 주제를 포기했던 이유는 2가지이다.
첫번째는 나의 생각과 거의 유사한 글을 박명림 교수가 "대쌍관계동학"을 한국현대사에 접목시켜 그의 박사논문으로 썼고 출판까지 했으며 상까지 받았다. 이 글에 박명림의 논문이 없는 이유는 그는 역사학 전공자가 아니라 정치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그 논문을 알지 못했다. 역사전공자들 논문을 정리하고 정치학과 사회학 논문, 책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의 책을 알게 됐다. 짜증스러워 그의 책도 안읽었고 이 주제도 덥었다.
이 주제를 덥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박명림의 글의 아니라 내가 공부한 학교의 교수님들께서 현대사를 역사학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것에 많은 의문점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교수님들은 역사학 밖의 학문(사회학이나 정치학, 경제학) 논문들을 인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연구사 정리의 성격이 강한 이 논문에 박명림의 글이 인용되지 않은 이유이며 내가 박명림의 글을 늦게 알게된 이유이기도 한다. 어째든 학위 따려면 이 주제는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논문주제를 찾기 위해서 3달을 도서관에 살았다. 현대사와 관련된 도서관 책들을 처음부터 다시 다 읽었다. 주제를 정한 후에 지금보면 많이 부족하고 몇 자 안되는 이 글을 쓰기위해서 일주일 동안 밤을 새웠다. 과방에서 글을 썼는데 그 덕에 학부다니는 후배들은 과방에서 떠들지도 못했고 단 2대뿐인 과방 컴퓨터를 일주일 동안 쓰지도 못했다.
볼품없는 이 글을 내가 사랑하는 이유는 이 들에 담겨 있는 내용이 아니라 여기에 담겨있는 나의 열정이다. 그것을 함께 나누지 못해서 아쉽지만 나의 소중한 추억이다.
다시 보면서 글을 다듬었다. 내용 중 일부는 제대로 생각이 안나서 문장만 다듬었다.
다시 보니 글의 주제가 아니라 내 글쓰기 능력의 문제였던 것도 같다. 당체 뭔 말인지 알아먹기 힘들다....ㅋㅋ
한반도에서 1972년 체제
- 남한의 유신체제와 북한의 사회주의 신헌법체제를 중심으로.
1.연구목적
1972년에 남북한에 권위주의 체제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논문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대다수 현대사 서술에서는 1945년 이후 남북한을 독립된 연구단위로 서술하고 한국전쟁 이후의 역사서술은 완전히 별개로 취급되고 있다(통일문제만이 예외이다.) 이것은 남북의 양체제가 너무나 극단적으로 다르며 남한연구자 및 외국연구자들의 북한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접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객관적인 조건에 따른 결과이다.
연구를 어렵게 하는 이러한 객관적인 조건은 1972년 남북한 헌법에 대한 내용분석에 앞서 그 헌법들을 통해 발현된 남북의 체제가 일시적인 유사성인지 해방 이후 한반도 역사의 지속적인 과정들 중의 하나인지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했다.
1972년에 성립된 양체제에 대한 검토과정에서 일부 유사성을 찾기도 했으나(주1) 구체적인 진행과정은 매우 달랐다. 본 연구의 목적은 남북한사의 유사성이나 차이성을 밝히는 것이 아니다. 통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북역사를 하나의 역사로 인식하는 것이며 이 연구는 그 노력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연구는 남북한의 역사가 “하나”여야 한다는 전제에 끼워 맞추기 보다는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지를 밝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1972년은 양체제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인데 근대화(주2) 과정에서 역사 경험을 공유하는 두 지역의 다른 체제가 유사한 과정을 거치는가 아니면 각각의 체제 특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가를 밝히는 것이 연구의 막지막 목표이다.
2.연구의 문제점.
⑴남한현대사 서술에서 북한
현대사에서 북한을 다루는 문제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가지이다.
강만길은 《고쳐 쓴 한국현대사》서문에서 이 문제를 “8.15 이후의 우리 민족사를 남한사를 주로 하고 북한사를 일부 덧붙이는 방법이나 남한사 따로 쓰고 북한사 따로 써서 하나의 책으로 묶는 방법은 옳지 않다. 북지역의 역사적 전개가 각각 고유한 역사성를 가진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서 남북한의 8 .15 이후사를 둘이 아닌 하나의 역사로 용해시켜 대등한 위치와 같은 분량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은 학문내외적으로 그렇게 쓸 수 있는 조건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또 그런 역사인식에서 8.15이후의 우리 역사를 볼 때 하나로 된 남북의 역사를 한국현대사로 이름짓기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주3)라고 하면서, 해방직후와 한국전쟁에서 북한을 약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와 다르게 김인걸은 《한국현대사 강의》에서 "통일과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닐뿐더러 여기에는 다양한 사회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그것도 국제적 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이제 국민들은 잘 알게 되었다.해방이후 반세기 동안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야 얻게 된 이 소박한 상식은 그렇지만 아직 시민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현실은 국민들이 과거 분단체제하의 폭압정치가 빚어낸 공포나 관제이데올로기의 세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 그 상식을 뒷받침랄 만한 구체적 증거를 확보하여 진실을 드러낼 힘을 갖추지 못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힘은) 모든 편견과 경직된 관념에서 벗어나 진실을 밝히는 작업으로부터 나온다. 그 과정에서 주어진 조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높이고, 보다 밝은 세상,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을 위한 노력을 경주할 때 힘이 붙는다. 이때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이지만,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한 물음이 동반되어야"(주4)라고 밝히고 북한과 통일문제를 각각 독립된 장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양자가 모두 냉전 이데올로기에 벗어난 객관적인 한국사 인식이 필요하며 그중 핵심적인 문제가 역사서술에서 북한 다루는 것임에는 일치하고 있다. 단지 지금 다룰 수 있는가 없는가(혹은 다루어야만 하는가 미뤄야 하느가)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있다.
두가지 입장이 갖는 공통점은 "한반도의 현대사는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강만길은 북한사가 빠짐으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인식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김인걸은 북한 자료와 비중의 상대적 소략과 자료의 나열, 평가의 부재로 인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들에 대한 판단은 그 자체가 역사적인 문제이므로 지금 현재로는 판단을 유보하고자 한다. 이 문제는 연구자들의 노력과 정치 상황의 변화에 의해 해결되어 갈 것이다.
⑵방법론
1977년 안병영의 〈북한 연구의 방법론〉(주5)이라는 논문에서 비교공산주의 연구를 위해 미국학계에서 개발한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하였다. 1988년 송두율의〈북한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주6)라는 논문이 나온 이후 연구방법론에 있어서 내재적 방법론과 외재적방법론자들 사이에서 북한연구의 올바른 방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 문제는 1980년대말의 주체사상논쟁으로 전화됐으며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북한 사회주의 정권의 존속여부로 인해 재차 논의 되었다.
방법론이 논쟁의 또다른 핵심이 된 이유는 북한문제를 다루는 사료와 논문들은 그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회, 동일한 사건들에 대한 큰 편차의 평가들은 '연구자가 객관적인 입장을 어떻게 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부터 하게되었고 '대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위한 자신의 존재조건'까지 재검토하도록 요구했다.
남한에 살고 있는 연구자인 "나"는 현재 북한의 내부에 있는가 외부에 있는가?
북한을 포함한 전체한국사에서 연구자인 "나"는 내부에 있으나 대립되는 양 체제 중에서 다른 한 체제 속해 있다는 점에서 "나"는 외부에 있다. 남북한에 대한 비교연구에 있어서 자신의 존재조건이 연구에 미칠 영향을 정확히 판단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은 어떤 방법론을 채택하여 연구하는 것이 객관적인가하는 물음에 앞서 확인해야 할 문제였다.
방법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상세히 다룰 것이다.
⑶연구자와 자료(주7)
남북한에 대한 연구는 방법론 문제에서 밝혔듯이 연구자들 사이의 시각차이가 큰 것과 함께 글들이 학술적이라는 보다는 정치적이다. 특히 북한문제에서는 일방적인 찬양이나 매도라는 양극단의 형태가 많다. 최근에 역사 연구자들에 의한 저술이 과거에 비해서 많아졌으나 남북한의 60․70년대에 대한 논문들 중의 많은 수가 비역사학자들에 의해 저술되었다. 연구자들 이외에도 기행문, 고발, 폭로, 찬양 등의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글들이 있다. 문제는 이런 글들을 어느 정도 참고해야 할 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역사관련 논문으로 현대사를 다룬 글들이 적고 개설적인 수준이다.
⑷주제와 내용
연구의 목적을 밝히기 위해 검토해할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1972년 체제(유신체제와 사회주의신헌법체제:이하 신헌법체제)의 등장배경(국내․국외)과 성립
-당시 통일정책(7.4남북공동성명등)과 체제강화정책의 상관관계
-1972년 이전의 통일정책 및 체제강화 정책의 관계
-동일지역내 두 개의 지방정권 지배집단의 경쟁과 공존의 문제:(미소냉전체제에 대한 적대적 동지관계라는 해석이 한반도에서 유효한가의 문제)
-세계정치정세(중소대결, 중미국교정상화, 월남통일, 미소화해, 미국의 제3세계전략의 변화 등)의 변화와 한반도
②근대화 과정에서 남북한의 차이점과유사점
-식민지 반봉건사회의 해체과정과 근대국가건설노선 및 그 운영
-자본주의적 발전조선과 비자본주의적(혹은 반제국주의적)발전노선의 비교
-스탈린식 공업화와 로스토우식 공업화의 남북한에서 전개과정
③ 남북한 지배집단 정권수립과 통치권 행사에 대한 양 지역 민중들의 대응.
④제3세계 권위주의 체제와 비교: 독자적인가 일반적인 표현인가?
⑤각체제수립의 모델검토(소련․중국․스페인․프랑스등)(주8)
비평 : 이상이 지금까지 관련된 글들을 읽으면서 정리한 주제와 관련해서 검토해야할 내용이다. 내용이 방대하여 주제의 성격이 남북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로 확대되었다. 역사 논문으로서 그 성격이 불명확하게 되었고 하나의 논문에서 깊이 있게 다룰 수 없게 되었다. 각 부분에 대한 대략적인 서술은 논문을 연표와 교과서를 베끼는 것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깊이 있게 다룰 경우 해석상의 오류와 편향을 피하기 어렵고 내용의 방대함으로 논문이라기 보다는 책이 될 것이다. 범위를 주제와 내용의 성격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3. 연구방법론
연구자는 그 학문이 사용하는 방법론․개념 및 이론들에 대한 비판적인 자의식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학문연구에 사용되는 방법론․개념, 이론들은 외부세계를 단순히 중립적으로 투명하고 왜곡없이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 주체의 주관적인 입장과 상태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고 바로 이러한 속성이 대상에 대한 관찰자의 이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 남한에서는 적대의식과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채색된 대부분의 북한 연구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북한체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확대․강조하고 긍정적인 측면은 무시 왜곡함으로써 북한체제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방해했다. 기존의 방법론에 반발하여 1980년대 후반부터 ‘내재적 접근법’이 대두하였다. 송두율․강정구․이종석 등의 내재적 접근론자들은 기존의 접근법들인 전체주의 이론․산업사회론에 근거한 수렴이론 등이 사회주의를 ‘밖’으로부터, 곧 자본주의나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가치나 척도에 따라 분석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사회를 ‘안’으로부터, 그 사회의 이념과 논리에 따라 분석하자는 ‘내재적’ 접근법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내재적 접근법에 대하여 강정인은 내재적 접근론자들이 ‘외재적 접근법 및 내재적 접근법에 대한 편협한 이해, 북한체제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논리의 일방성,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회피 또는 결여(주9), 사회주의권 ’붕괴‘와 변혁방향을 설명하는데 따른 내재적 접근법의 무력성’ 등의 비판을 하면서 대상의 정확한 인식을 위해서 외재적 방법론은 필요하며 사회현상을 두 입장에서 동시에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주10)
송두율은 내재적 접근법 비판에 대한 반론에서 외재적 방법론이 은연중에 외재적=보편적=서구적이라는 등식에 빠져 있음을 비판하며 북한 사회에 대한 ‘내재적’ 접근은 남한사회에 대한 동등한 수준에서의 내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내재적(immanent)’이라는 뜻은 우리 인식이 ‘경험’에 의거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 강조하는 것이며 ‘내재적’의 반대말은 ‘외재적(extemal)이 아니라 ’선험적(transzendental)'이며 북한 사회의 ‘내재적’ 접근은 북한 사회주의가 스스로 제시한 ‘이념’과 ‘경험’의 긴장관계를 드러내 보일 수 밖에 없으며 남북한 사회에 대한 수미일관된 ‘내재적’ 접근은 경우에 따라서 ‘외재적’ 척도의 자의성을 배제함은 물론 사회과학적 논리와 방법의 일관성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주11)
김연철은 이러한 일련의 논쟁이 ‘연구방법’의 논쟁이기보다는 ‘인식의 방법’에 대한 논쟁임을 지적하였다. 그는 모든 관찰자는 외부에 있으며 문제는 관찰방법이며, 여기서 ‘행위자’의 이념․가치․동기․목표를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과 방법을 갖고 관찰한다는 것 사이에는 대립적인 측면보다 보완적인 측면이 많음을 지적했다. 또한 북한 연구의 문제점으로 다른 현실사회주의권 국가와는 달리 제한된 범위 내에서도 연구자들의 직접적인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것과 북한 연구자들의 북한에 대한 경험이 북한 공식 출판물 뿐 임을 지적한다.(주12) 그는 북한연구에 있어서 이러한 ‘경험 제약’을 극복할 대안으로서 ‘경험비판’을 제안한다.(주13)
이런 일련의 논쟁은 우리의 남북한 연구가 여전히 초보적인 단계이며 연구자들 스스로가 정치상황의 한계에 매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사의 실체로서 북한에 대해서 객관적인 인식을 갖기위한 학문적인 노력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4.남북한 헌법에 대한 분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대한민국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사회주의헌법(1972.12.27) 11장 149조 |
헌법개정안 공고에 대한 대통령 담화 및 동제안 이유서(1972.10.27) |
…막스-레닌주의를 우리나라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4조) |
민주주의의 한국적 토착화를 기한다 |
․…대안의 사업체계와 새로운 농업지도체계에 의하여 나라의 경제를 지도 관리한다(제30조) …경제건설을 다그치고 인민생활을 끊임없이 높이며 국방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인민경제 발전계획을 작성 실행한다(제31조) |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모든 면에서 안정을 유지하고 번영의 기저를 확고히 하였으며 ★새마을 운동을 국가시책의 우선 과업으로 정하여… |
․…최고인민회의와 지방 각급 인민위원회를 통해 주권을 행사(제7조) ․…집단주의 원칙을 기초(제49조) |
국민의 기본권을 우리 나라 실정에 알맞게 최대한 보장하였고 |
국가는 내외 적대분자들의 파괴 책동으로부터 사회주의 제도를 혁명화․노동계급화한다.(제11조) |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명완수를 지향 ★전화의 재발을 미연에 방지하고 평화로 조국통일의 길을 모색 |
주석은 국가의 수반이며…국가주권를 대표한다(89조)종앙인민위원회를 직접 지도(제91조)정무원회의를 소집하고 지도(92조). 주석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선거(90조)한다. |
대통령은 통일주체 국민회의의 대법원에 의한 간접선거 법관과 국회의원1/3에 대한 임명권 장악 국정 감사권 폐지. 중요정책을 국민투표로 합법화 |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조문과 남한의 헌법개정안 공고에 대한 대통령 담화 및 동제안 이유서는 비교의 격이 맞지 않으나 헌법 원문을 구하지 못해서 모두 한 책《한국현대사강의》에서 재인용했음.
*‘★’는 〈대통령 특별선언 및 동 공약 계엄포고 제1호(1972. 10. 27)〉에서 인용한 것임
북한 신헌법의 특징은 노동당의 지위를 명시하였고 사회주의적 소유제도를 확립하였고 주체사상이 헌법규범화 되었으며 국가 주석제도를 도입하여 그 권한을 강화하였다.(주14) 유신헌법의 특징은 대통령이 중요정책을 주민투표로 합법화 시켰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대통령를 선거하며 국회의원1∕3 를 대통령이 추천하며 법관임명권을 대통령이 갖으며 대법원의 위헌 판결권을 헌법위원회에 귀속시켰다. 구속적부심제를 폐지하고 자백만으로 처벌이 가능하게 되었고 긴급조치권을 대통령이 갖게 되었다.(주15)
양 헌법은 표현방식의 차이가 있으나 대통령(주석)의 권한을 절대화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고권력자의 선출을 간선제로 하였다.(주16) 중요정책의 국민투표제와 지방인민위원회를 통한 주권의 행사 등의 표현으로 형식적 민주주의가 확대된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자신들 체제의 존재목적으로 통일을 말하고 있다.(남:조국의 평화적 통일, 북:온 사회를 혁명화․노동계급화 한다) 사법부에 대한 부분은 살펴보면 북한은 1956년 종파투쟁(주17) 이후 사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우위가 확보되었으며(주18) 유신체제에서는 이때 그 우위를 법적으로 확인하려 하였다 .북한의 신헌법체제는 50년대 이후 권력투쟁의 결과물로서 김일성의 권력독점을 확인하는 것으로 유신체제는 박정희의 권력 독점을 위해 만들어 졌다는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강만길, 《고쳐 쓴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1994
김인걸 외, 《한국현대사강의》,돌베개, 1998
임영태, 《대한민국 50년사》, 들녁, 1994
한국현대사연구회 현대사 연구반, 《한국현대사》2,3,4, 풀빛, 1991
중앙일보특별취재본부, 《실록 박정희》 중앙 M&B, 1998
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역사비평사
최승화 외, 《북한개론》, 을유문화사, 1990
이종석, 《조선로동당연구》, 역사비평사, 1995.
안병영, 《현대공산주의연구》, 한길사, 1982.
(주) --------------------------------------------------------------------------------------------------
1. 중공업 중심의 경제개발, 군부 중심의 권력운용, 대외 자주화 노력, 북한에서의 남로당세력 제거와 박정희의 이북출신 군인맥의 척결 등
2. 박정희는 자신의 집권에 대한 정당성으로 사회적합의였다. 4.19의 민주화 개념을 대신해서 근대화를 제시했다. 여기서는 산업사회, 탈봉건사회를 향한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총칭으로 사용한다.
3. 강만길,《고쳐 쓴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 1994.
4. 김인걸 외 편저, 《한국현대사강의》, 돌베개, 1998.
5. 안병영, 《현대공산주의연구》, 한길사, 1982.
6. 송두율, 〈북한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와 사상》, 1988년 12월호.
7. 사료와 논문의 문제는 가장 중요하지만 생략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논문목록과 사료의 목록만으로 그 양이 대단히 많은데 아직까지는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본 글들은 학교와 시중에서 구할 수있는것들에 대한 검토하였고 현재까지 출판된 중요자료들에 대한 검토후에 자료의 문제는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문제를 생략했다.
8. 신헌법의 정치활동 규범들의 하나인 ‘군중노선’은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주장과는 다르게 중국의 마오저뚱이 먼저 주장하고 문화혁명 시대에 실천한 것이며 유신체제의 구상자들의 대통령의 비상대권의 필요를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제 16조의 모델을 빌어서 강조했다.
김민배,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역사비평》30호, 역사비평사, 1995년 가을호
9. 이종석은 이에 대하여 “진보적인 북한연구자들이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언명이 정치권력에 의해 ‘북한 혐오증을 확대재생산’하는데 이용될 소지가 크다”는 이유가 북한비판을 회피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종석, 〈북한연구방법론, 비판과 대안〉, 《역사비평》 1990년 가을호, 역사비평사.
10. ‘냉전구조의 포로’적인 시각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가 대단한 것 같지만, 장구한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산업사회와 봉건사회(농업사회)의 차별성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연구자의 연구동기와 연구주제에 따라서 자본주의와 사회의 차별성에 크게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와 반대로 산업사회 또는 근대사회로서 양자의 공통성에 관심을 가지면 연구하는 접근법 역시 적절한 접근법이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다니엘 벨의 《탈산업사회이론》, 《정보사회론》은 이러한 이론적 전제에 입각해 있다.
강정인, 〈북한연구 방법에 대한 새로운 제언〉《역사비평》26, 역사비평사, 1994년 가을호
11. 송두율, 〈북한연구에서의 ‘내재적방법’ 재론〉《역사비평》28호, 역사비평, 1995년
12. 공식적인 서술은 현실을 반영할 뿐이지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 연구자의 인식대상은 북한의 현실이지 공식 문헌의 서술은 아니다. …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후적 성격 규정의 일방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면, 이는 행위자 진술에 주석을 다는 행위이다. … 연자들의 일부가 ‘주석을 다는 행위’(어떤이는 요약, 어떤이는 치장)를 연구라고 착각하고 있는 현실…
김연철, 〈북한연구의 이데올로기적 편향 극복〉《역사비평》29호 ,역사비평사, 1995년 여름
13. 그는 공간문헌의 은유성, 간행시기별 서술의 차이, 정기간행물 등에서의 누락․탈락․삭제의 의미분석 등을 ‘경험인식의 불안정성’의 극복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김연철, 위의 글
14. 최승화, 〈헌법과 통치구조〉《북한개론》, 을유문화사, 1990.
15. 류정임, 〈유신체제의 성립과 전개〉《한국현대사》3, 풀빛, 1991.
16. 통일주체국민회의와 최고인민회의의 위상은 다르다. 전자는 대통령 선거인단의 성격이 강하고 후자는 원래가 대의기관이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에 출마할 사람의 선택권을 노동다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 권력자의 영구집권 의지를 반영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17. ‘8월 종파’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이종석은 이 투쟁이 권력투쟁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사상투쟁과 경제건설사업에 연계되면서 추진된 점을 주목하고 김일성 중심의 단일지도체계를 확립하는 계기로 작용하였으며, 이것이 당내 정치과정의 역동성 탈각과 경직화를 낳은 결정적인 계기로 보고 있다.
이종석, 《조선로동당연구》, 역사비평사, 1995.
18. 이종석은 1950년대를 북한에서 사회주의․주체사상․유일지도체계 등 오늘의 북사 사회를 대표하는 중요한 특징들이 형성된 시로 보았다.
이종석, 〈북한의 전후복구건설과 ‘반종파투쟁’〉《한국현대사》2, 풀빛, 1991